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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터-

[주부, CEO가 되다] ‘스타 도시락’ 인기로 해외서도 주문 행렬

[주부, CEO가 되다] ‘스타 도시락’ 인기로 해외서도 주문 행렬

친구 부탁으로 우연히 시작…포장엔 사연 담고 음식은 입맛대로


보석함 같기도 한 것이 곱게 만든 반짇고리 같기도 하다. 뚜껑을 열면 그야말로 반전이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한가득 담긴 ‘도시락’이다. ‘도시락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김수지(49) 수지킴도시락아트 대표의 작품이다.

그를 소개할 때면 강호동·싸이·원빈·유아인·소녀시대·장근석·이승기 등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도시락 아트의 시작이 연예인들을 위한 ‘스타 도시락’을 만드는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특히 받는 사람의 취향과 식성을 고려한 음식 담음과 개개인의 사연을 담은 독특한 포장을 100%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인기를 부추겼다. 도시락 가격은 1만 원대부터 시작하지만 메뉴를 추가할수록 금액이 수백만 원대까지 올라가 ‘상한선’이 없다. 비싸지만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주부였던 김 대표는 결국 사업 시작 4년 만에 월평균 5000만~6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도시락 업체를 일궈 낸 경영자가 됐다.



김수지
수지킴도시락아트 대표

그녀의 성공 비결
1. 꿈꿔라 그리고 구현하라
2. 모든 것으로부터 배워라
3. 열정을 보여라
4. 이윤보다 큰 목표를 갖고 행동하라


“예술 작품 만들 듯 정성 쏟아”
김 대표는 2010년 7월 미국에 사는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인기 MC인 강호동의 팬이었던 친구는 곧 생일을 맞이하는 그를 위해 제작진을 포함한 130인분의 도시락을 만들어 보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는 가정에서 살림을 하다가 경기 광주시 퇴촌면의 한 삼계탕 전문점에서 잠시 일을 봐주고 있을 때였다. 요리도 하면서 이윤이 남으면 반을 갖는 월급 사장을 하고 있었다. 문 닫기 직전까지 내몰린 식당이었지만 솜씨 좋은 김 대표의 손을 거치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김 대표는 부탁한 친구의 마음을 생각해 잘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강호동 씨에게 친구의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강 씨의 식성을 조사해 도시락 메뉴를 짰다. 연잎 밥에 갈비·장어구이·반찬·국·샐러드에 과일까지 담았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담을 예쁜 도시락 통을 구하려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더 예쁘고 정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천으로 도시락을 장식했다. 수저집도 직접 만들었다. 제작진을 위한 100개의 햄버거에 쓰일 빵도 직접 구울 만큼 정성을 쏟았다.

“일이 다 끝나고 몸살을 앓을 만큼 힘들었지만 일을 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나중에 친구가 강 씨와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는 얘기를 전해 왔는데, 감동이었죠. 돈 버는 걸 떠나 도시락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전한다는 게 큰 행복이었어요.”

김 대표는 연예인의 도시락을 만들었다는 색다른 경험에 자신의 블로그에 도시락 사진과 글을 올렸다. 한창 블로그가 유행할 때라 그 역시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갓 시작한 블로그였다. 아이들을 앉혀 두고 “엄마가 인터넷으로 대박을 칠 거야”라고 말했지만 응원은커녕 코웃음만 돌아오던 때였다. 하지만 강호동 도시락 건으로 김 대표의 블로그는 정말 ‘대박’을 쳤다. 평소 200~300명에 불과하던 방문자가 한 달 사이에 2만 명까지 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과 가격을 묻는 글이 셀 수 없이 올라왔다. 유아인·소녀시대·2NE1·2PM·장근석·이승기·샤이니·유노윤호 등의 팬들이 도시락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예인들의 특징을 파악해 그에 맞게 도시락 통을 꾸미고 메뉴를 만들어 보냈다. 소문이 퍼지자 해외까지 주문이 밀려들었다. 자연스럽게 식당을 접고 본격적으로 도시락 사업에 나섰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주부에서 어엿한 창업자가 돼 있었다.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꾸미고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음악이나 미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미국 록 그룹에 빠져 앨범을 사 모으고 저축할 돈을 해외 인테리어·패션 관련 잡지를 사는 데 쓰곤 했다. 한때는 만화에 심취해 유명 작가의 집을 무작정 찾아간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경험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연예인 도시락 못지않게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일반인들의 도시락 주문도 많다. 아들의 첫 애인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다는 한 엄마의 주문부터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밥 한 끼 차려 주고 싶다고 주문한 도시락이 부부로 맺어 주는 계기가 된 적도 있다. 미국에 이민 간 딸들이 한국에 있는 친정어머니를 위해 주문하기도 하고 홀로 계신 아버지의 생일을 위해 만들어 달라는 이들도 있다.


전국 36곳에 ‘수지킴’ 브랜드 속속
누군가의 애틋한 마음을 대신 전하는 만큼 제작에는 공이 많이 들어간다. 주문받은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도시락 포장을 기획하고 메뉴를 정한다. 유기농 식재료와 직접 거래한 재료만 사용한다.

“제게 도시락 만드는 일은 창작이에요. 도시락으로 사람의 마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주문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사연을 묻는데, 주문이 들어오면 사연에 맞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거나 오리고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 도시락 통을 만들어요. 음식도 정성을 다해 담아내죠.”

그가 만드는 도시락이 알려지면서 가맹점을 내자는 제의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가맹점을 내는 대신 도시락 만드는 기술을 가르친 후 ‘수지킴 아뜰리에’라는 브랜드로 창업할 수 있게 도왔다. 40여 명의 수제자들은 현재 전국 36곳에서 각자의 상호명을 갖고 수제 도시락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도 모두 주부였어요. 집에서 가정만 돌보다 보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또 발견할 엄두도 못 내는 주부들이 많은데, 의외로 재능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뭔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뭔가 해야만 시련도 오고 실패와 역경도 딛고 그렇게 힘을 길러 성공의 단맛도 느낄 수 있어요.”

김 대표 역시 살림만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업에 뛰어든 지 햇수로 5년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일을 시작하며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성공의 단맛도 느껴봤다. 바람처럼 시간이 흘러갔다지만 지금의 그는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다.

“도시락 하나로 사업 아이템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라요. 그래서 사업을 늘리기 위해 현재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국의 수지킴 아뜰리에가 좋은 네트워크가 돼 주겠죠. 물류·유통 전문가들을 통해 공부도 많이 하고 있고요. 이제야 뭔가 경영자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에게도 당당하고 멋진 엄마가 됐어요.”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를 전하는 그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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