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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 세계로-

자본주의의 발상 전환..기부하는 신발, 탐스(TOMS) 창립자 인터뷰 ①


2년여 전 고가의 수입 패딩 점퍼 열풍을 취재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80년대 코끼리 밥솥 열풍처럼 옛날옛적 이야기로만 느껴지지만, 그 땐 그게 그렇게 유행이었기에 언론사마다 앞다퉈 기사화했다. 

나는 해당 업체를 찾아가 소재가 뭔지 왜 그렇게 비싼지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나올 때 그 회사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탐스도 수입해요.”
 
‘탐스라고?!’ 관심 레이더에 불이 켜졌다. 하지만, 당일 뉴스 제작 때문에 더 길게 얘기할 시간은 없었다. 대신 나는 짧게 한마디만 남겼다: “저 탐스 정말 좋아해요.”  

 이 한마디가 2년이 넘는 생명력을 가질 줄이야. 한 달 전쯤, 갑자기 그 때 그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탐스의 CEO이자 창립자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가 방한한다는 내용이었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시간 맞춰 만나겠다고 했다.

간혹 유사한 이름의 커피 전문점 브랜드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어서 설명하자면, 탐스는 신발 브랜드다. 스니커즈부터 샌들까지 다양한 모델을 만드는데, 가장 최초이자 대표적인 모델은 사진과 같은 슬립온(발을 쓱~ 집어 넣어 신고, 쓱~ 빼서 벗을 수 있는 단화)이다.

워낙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렸으니 아마 어디서 많이 본 듯 눈에 익을 거다. 평평한 고무 바닥에 가죽 안창, 그리고 캔버스를 두른 단순한 형태다. 편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유리 상자에 넣어 고이 보관하고 싶은 마놀로 블라닉이나 지미추의 느낌과는 거리가 먼데, 나는 왜 이 브랜드에 열광하는 걸까?

신발 뒤꿈치에 앙증맞게 달린 로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단 바탕이 되는 하늘색과 흰색의 줄무늬 사각형은 아르헨티나 국기에서 가져왔다. 그 위에 적혀 있는 이름 “TOMS”는 “shoes for tomorrow(내일을 위한 신발)”, 즉 “TOMorrow Shoes(내일의 신발)”를 줄인 말이다. 합치면, “아르헨티나의 내일을 위한 신발”인 셈이다. 그게 무슨 말일까?

10년 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휴가차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상당수의 현지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보게 된 것. 아이들의 발은 당연히 상처와 물집으로 가득했다.

몇몇 자원봉사자들이 신발을 기증 받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는 있었지만, 무료 기증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가 않아 보였다. 아이들의 발은 계속 자라는데, 기증은 언제 끊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냈다. 신발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되, 기부와 연계하기로. 다만, 수익금의 몇 퍼센트를 기부하는 식의 복잡한 방정식이 아닌, 아주 간단한 한 줄짜리 공식으로 방식을 정했다. 바로 1:1, ‘One for one(원포원)’ 이었다. 신발 한 켤레가 팔려나갈 때마다, 또 다른 신발 한 켤레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기부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신발 걱정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미래, 아르헨티나의 내일을 꿈꾸는 마음에서 시도한 일종의 프로젝트였을 뿐, 훗날 이 작은 아이디어가 이렇게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시작된 '탐스'는 그동안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전세계 70여개 국의 아이들에게 4천5백만 켤레 이상의 신발을 전달했다(지난해 기준. 판매 수량과 기부 수량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음). 전부 똑같은 모양의 신발은 아니고, 지역의 기후에 따라 겨울 부츠나 운동화가 전달되기도 했다.

두 발을 감싸주는 튼튼한 신발이 얼마나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생활 영역을 넓혀줬을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신발을 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탐스 신발이 생애 첫 ‘새’ 신발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아이들의 자존감과도 직결됐다. 처음으로 남이 신던 헌 신이 아닌, ‘새 신’을 선물 받은 아이들은, 오직 나만을 위한 무언가 새 것을 선물 받았다는 것 자체로도 자신이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란 걸 깨달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탐스는 이 세상에 신발 외에도 생존과 직결된 결핍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예컨대, 전 세계적으로 2억8천5백만 명이 시각 장애가 있고, 그 중 90%가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단 사실은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2011년부터는 안경과 선글라스를 출시해 ‘one for one’을 적용했다.

고객이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하나 살 때마다, 안과 관련 질환을 가진 사람 한 명에게 시력을 되찾아주는 개념이다. 5년 동안 13개 나라(캄보디아, 탄자니아, 네팔 등)에서 32만5천여 명에게 ‘시력’을 기부했다. 시력 교정용 안경을 처방해 주거나 이물질 제거 같은 안과 처치를 해주거나, 백내장 등 시력 회복 수술을 해줬다는 뜻이다. 취향에 맞는 안경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배려는 덤이었다.

2년 전부터는 커피 사업에도 도전했다.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전 세계 7억 8천만 인구를 돕기 위해서다. 여기에도 역시, ‘one for one’가 적용됐다. 아직 우리나라에 커피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고객이 커피백 한 개를 살 때마다, 일주일 분량의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식이었다. 벌써 페루와 르완다 등 7개 나라에 17만 5천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식수를 제공했다. 해당 지역의 농부로부터 생두를 구입하는 센스도 물론 잊지 않았다.

지난해부터는, 가방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전 세계에서 연간 4천만 명의 산모가 비위생적인 환경과 전문인력의 도움을 받지 못해 출산시 감염으로 사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객이 가방 한 개를 살 때마다 ‘안전한 출산’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첫째, 분만 시설과 조산사들의 양성을 지원했고, 둘째, 장갑이나 거즈, 탯줄 절단기 등의 물품이 들어있는 위생 키트를 나눠주었다. 현재 아이티와 인도,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4개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1년 만에 이들 지역 산모의 감염율과 신생아 사망률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활동들은 어떤 변화를 낳았을까? 과연 수혜자 개개인의 건강이 나아지는 데서 그쳤을까? 공중보건 상태의 개선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경제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신발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 관점에서는 신발 한 켤레가 대수냐 싶겠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신발은 교복의 일부다. 다시 말해, 신발이 없으면 맨발로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다. 그러니 신발의 유무는 배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매우 절실한 문제다.

물도 마찬가지다. 물이 귀한 아프리카대륙의 경우, 물을 구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이 연간 400억 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그만큼 근로나 교육의 기회가 날아간다는 얘기다.

만약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멀리 아프리카의 누군가가 양 어깨에 양동이를 짊어지고 우물까지 수 시간을 걸어가는 대신, 앉아서 책이라도 한 권 더 읽을 수 있게 한다면, 정말 그 커피가 맛도 있고 멋도 있지 않을까?

시력개선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미국 검안학회에 따르면 학습의 80%는 시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머리 위에 걸친 선글라스 덕에, 중앙아시아의 누군가는 글자를 익히고 그림을 그릴지도 모르는 거다. 그 선글라스, 폼 잡을 만 하지 않은가?

3년 전에는 이밖에 더 많은 종류의 착한 물건들을 한 데 모은 온라인 몰(TOMS marketplace)도 열었다. 이제 슬슬 입이 아니 손이 아플라 하지만, 이 공간에서는 보청기를 기부할 수 있는 헤드폰부터 우간다 할머니들이 직접 손으로 엮은 장신구까지, 소규모 사회적 기업들과 손잡은 여러 분야의 아이템들을 선보이고 있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디자인한 스카프를 취급했던 곳도 이곳이다. 이쯤되면, ‘신발 브랜드’라는 이름표가 '탐스'를 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들 것이다. 요새는 책가방과 묶어서 ‘왕따’ 방지 프로그램까지 개발하고 있다니, 나 원 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는 흔한 이름표로도 표현이 안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함에 있어, 빈곤 탈출을 위한 필수 요소 가운데 한 가지가 추가로 생성된다는 점이다. 바로 일자리다. 탐스는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상품들을 최대한 현지에서 생산한다.

신발 제작의 경우, 초창기에는 아르헨티나의 신발 장인들이 거의 가내 수공업 수준으로 도맡아 했지만, 지금은 중국과 아이티, 인도, 케냐, 에티오피아까지 6개 나라의 공장이 담당한다. 그리고 각 나라당 7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지만, 이미 일어난 단기적 변화보다 앞으로 목격하게 될 장기적 변화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버거울 정도로 일일이(그러나 공들여) 나열했지만, 탐스의 기부 담당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기부 지역을 방문해 효과를 점검하고 보완할 점을 찾는 것은 물론, 미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고유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것도 포함된다.

도대체 제조회사가 이런 업무까지 어떻게 처리하느냐? 기부를 전담하는 팀, giving team이 따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심지어 CEO, CFO 처럼 CGO(Chief Giving Officer)도 있다.   

아하, 그렇다면 탐스를 기부 전문 업체라 부르면 되는 것일까? 쉽게 말해, 탐스는 단지 자선사업을 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탐스는 엄연한 영리 추구 기업이다. 어떻게 영리활동과 자선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지, 스크롤의 압박을 방지하기 위해, 그 얘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전하겠다.      

안현모 기자ahnhyunmo@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