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글:안홍기, 그래픽:고정미, 편집:손지은]
그냥 물건이 떨어진 장면일 뿐이라면 '별 일 없었네'라면서 넘어갈 수 있겠지만, 감사패가 떨어진 곳은 내가 고향집에 갈 때마다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는 자리다. 특히 감사패가 떨어진 곳은 내 머리가 위치하는 바로 그 곳이다. 원목과 쇳덩이로 만들어진 무거운 감사패가 자고 있는 내 이마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난 지난 12일 부산 고향집에서 보내온 '피해 현장' 사진. 고향집에 묵을 때마다 내가 자는 자리에 감사패가 떨어졌다. |
ⓒ 안홍기 |
이같이 선반이나 책장에 올려둔 장식품 같은 물건들은 이번 지진과 같은 규모에도 쉽게 떨어질 수 있고 대형 지진에는 날아다니는 무기로 돌변한다. 액자와 거울도 마찬가지다. 책장과 같은 높은 가구들이 쓰러질 때 사람이 깔리게 되면 치명적이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진만 나면 접속이 안 된다는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국민재난안전포털 → 재난예방대비 → 자율안전점검 순으로 찾아들어가보니 '우리집 안전점검' 페이지가 있다. "매월 4일은 생활 안전 점검의 날"이라며 점검표를 인쇄해 매달 체크하라고 돼 있는데, 화재·전기사고·가스폭발에 관한 점검 항목들이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는 지진이 난 뒤 행동요령 자료와 동영상은 여러 건 올라와 있지만, 각 가정과 직장이 지진에 어떻게 대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자세히 알려주는 자료는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시대. 지진이 잦은 외국의 정부나 지자체들은 각 가정에서 지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참고할만한 자료를 갖추고 있었다. 무려 한글로 된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쉽게 참고할 수 있다.
한글로 나온 뉴질랜드 EQC와 일본 도쿄도 지진대비 매뉴얼
▲ 뉴질랜드 지진대책위원회의 지진 발생에 대비한 손쉬운 가정 안전 조치’ 중 일부. |
ⓒ 뉴질랜드EQC |
뉴질랜드와 한국의 주거형태가 많이 다른 탓에 온수실린더 고정, 비상식수공급, 굴뚝 고정 등은 매뉴얼 그대로 따라 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 매뉴얼은 각 가정에서 지진에 대비해 살펴봐야할 지점들을 제시한다. 각종 장식품, 어항과 도자기, 액자 및 거울, 높은 가구들을 고정하는 건 지진으로 인한 파손뿐 아니라 인명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도쿄도가 발행한 <도쿄보사이>(동경방재) 매뉴얼 중 일부. |
ⓒ 일본 도쿄도 |
<도쿄방재>는 "지진 부상자의 30~50%가구류의 전도(넘어짐)·낙하·이동이 원인"이라며 "방에 물건을 놓지 않는 것이 최대의 방어"라고 강조합니다. 이 매뉴얼은 L형 브라켓을 비롯한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가구의 전도·낙하·이동을 방지하는 법을 소개한다.
가구류는 L형 브라켓과 나사로 벽에 고정시키고, 바퀴달린 가구는 잠그거나 미끄럼 방지 고무 등으로 고정시키는 걸 추천한다. 식탁과 의자도 진동이 미끄러지지 않게 미끄럼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 붙박이 찬장의 경우엔 수납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찬장 잠금장치 부착을 권하고 있다.
천장에 매다는 조명은 체인으로 고정하고, 창문 유리는 비산방지필름을 붙여 깨졌을 때 파편이 날리는 걸 방지한다. <도쿄방재>는 특히 사무실의 지진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벽면수납장, 복사기, 파티션, 게시판 등 대형 지진에 대비해 미리 살펴봐야할 부분들을 제시한다.
'비상배낭'에 챙겨야할 물건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행동요령대로 안전하게 대피를 잘 했다면 그 뒤엔 어떻게 될까. 일단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겠지만, 무작정 구호를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 <도쿄방재>는 지진을 포함한 각종 재해시 피난생활에 필요한 용품도 꼼꼼하게 제시하면서 비축물품 목록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재해 뒤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건 '비상용 반출 가방'으로, 피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배낭에 넣어뒀다가 챙겨서 대피하는 '비상배낭'이다. 이 매뉴얼에선 ▲ 손전등 ▲ 담요 ▲ 식품 ▲ 젖병 ▲ 휴대용 라디오 ▲ 건전지 ▲ 인스턴트 라면 ▲ 현금 ▲ 헬멧 ▲ 라이터 ▲ 통조림 따개 ▲ 구급함 ▲ 방재두건 ▲ 양초 ▲ 칼 ▲ 적금통장 ▲ 면장갑 ▲ 물 ▲의류 ▲ 인감 등을 '비상배낭'에 미리 챙겨두라고 권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젖병, 통장 등은 각 개인의 사정에 맞게 빼거나 더하면 되겠다.
▲ <도쿄방재>가 권장하는 비상 배낭 |
ⓒ 고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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