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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광장-

[스크랩] 종군 ‘위안부’ 와 ‘종군 위안부’ 의 크나 큰 차이


 

 “종군 위안부 종군 위안부 의 크나 큰 차이? 글쎄, 무언가 심오한 뜻이 숨어있는 것 같은데……. 저 작은 따옴표 위차가 다르다는 건가? 도대체 뭐야!”


  즐거운 토요일,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풍 아닌 소풍이랄까? 명목적인 봉사활동이란 목적을 뒤로한 채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버스에 올랐다. 약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버스에서 그렇게 떠들고 떠들던 아이들이 갑자기 엄숙한 분위기로 전환되던 순간, 우리는 드디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 도착했다. 나눔의 집이란 현재 종군 ‘위안부’ 할머님 10분이 살고 계신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발걸음을 나눔의 집 역사관으로 돌렸다. 그 곳엔 따로 역사관을 마련하여 그 당시 할머님들의 아픔을 증명해주는 여러 사진들과 지도 및 할머님께서 손수 그리신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신 이동원 역사 선생님께서 작품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무엇보다 김순덕 할머님의 <못다 핀 꽃> 이란 작품이 제일 눈에 띄었다. <못다 핀 꽃>이란 작품 이름이 더욱 내 마음을 울렸다. 할머님들의 작품에 이어 그 당시 종군 ‘위안부’에 관련된 영상을 보았다. 영상과 함께 그 곳의 가이드께서 설명해주신 ‘근소한 차이’ 하나가 바로 위의 제목이다. 종군 ‘위안부’와 ‘종군 위안부’ 이 두 단어는 얼핏 눈으로 보기엔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같아 보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저 두 개의 작은따옴표 위치에 따라 어마어마한 오차가 생긴다. 따옴표가 위안부에 위치한 전자는 본인의 의지가 아닌 ‘끌려갔다’는 의미로서의 종군 위안부이며 후자는 이와 반대인 ‘본인의 의지’가 내포된 종군 위안부란 뜻이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큰 오차 속에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게 작은따옴표를 종군 위안부 양 끝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나눔의 집을 방분한 큰 보람은 아마 이 시간이 아닐까 한다. 바로 할머님들의 그 당시 피해 상황을 듣는 시간이다. 그 때 우리들에게 생생한 증명을 해주신 이옥선 할머님은 말씀하시는 중간 중간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덩달아 우리들의 눈에도 눈시울이 고였다. 할머님은 전쟁이 끝나 지금 이 상황이 오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마음의 상처를 받아왔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조국으로 돌아와도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 시선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지금 이렇게 할머님들이 모여 나눔의 집을 만들기까지 아마도 어머 어마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할머님은 그 당시 상황을 말씀하신 뒤 우리들에게 부탁 한 가지를 하셨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지금의 청소년들이라고. 그러기 위해선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한다.’ 고 당부하셨다. TV에서 아무리 일본이 잘못했다고,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백번 천 번을 들어 왔어도 어찌 이옥선 할머님의 말씀 한 마디 당부만 할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선 직접 체험하고 직접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에게 굳이 봉사활동이란 명목적인 목적이 아닌 역사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직접 방문뿐만이 아닌 나눔의 집 홈페이지(http://www.nanum.org/) 를 방문하여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도 올바른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출처 : 청소년웹진 MOO
글쓴이 : MO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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