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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기사모음-

무기수와 13년간 '희망편지' 나눈 경찰관

2007년 8월 22일 (수) 10:15   연합뉴스

<사람들> 무기수와 13년간 '희망편지' 나눈 경찰관


여수경찰서 민병규 경감, 40대 무기수와 인연 맺어

(여수=연합뉴스) 전승현 기자 = "소걸음으로도 천릿길 만릿길을 갈 수 있는 것 처럼 대장님의 오랜 사랑과 관심 속에 조금씩 변화하는 제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속죄의 삶을 살고 있는 재소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현직 경찰관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재소자가 13년 간 '희망편지'를 주고 받으며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있어 관심을 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남 여수경찰서 중앙지구대장 민병규(56) 경감과 순천교도소에 복역중인 박수일(가명.42)씨.

민 경감과 박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92년. 민 경감은 여수경찰서 수사계장 당시 유치장을 관리하면서 강도.살인 혐의로 구금 중인 박씨를 처음 알게 됐다.

여수경찰서 기독신우회 회장이었던 민 경감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박씨에게 성경책을 읽도록 권장하는 등 교화에 힘을 쏟았다.

이후 박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돼 대구교도소로 이감됐고 두 사람 사이의 소식도 끊겼다.

그러나 민 경감의 뇌리에 박씨의 흔적이 사라질 무렵인 1995년 여름, 박씨로 부터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사춘기에 불우한 가정에서 생활한 박씨가 소식이 끊긴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였고, 민 경감은 수소문 끝에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재혼한 아버지의 근황을 답장을 통해 박씨에게 알려줬다.

이후 두 사람은 매달 한 두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고 민 경감은 박씨가 수감된 대구와 군산 등지의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면회를 하는 과정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혈육'이 됐다.

민 경감은 22일 "혈육이라고는 아버지밖에 없는 박씨는 당시 아버지가 재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낙심 했었다"며 "나를 아버지 또는 큰 형 처럼 믿고 따르고 싶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민 경감은 13년 동안 박씨로 부터 받은 편지 100여 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현재 순천교도소에 복역 중인 박씨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모범수로 생활하고 있는데 대해 보람을 느끼고 있다.

민 경감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많은 세월이 흘렀다"며 "박씨가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 경감은 `삶이 값지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내용을 담은 박씨의 최근 편지를 읽으며 추석 무렵 박씨를 특별면회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shchon@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