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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서 만장일치 ‘개척상’… 용인외고 박수빈양

2008년 2월 15일 (금) 04:54   중앙일보

졸업식서 만장일치 ‘개척상’… 용인외고 박수빈양



[중앙일보 백일현.김상선] 14일 오후 경기도 모현면 한국외대 부속 용인외고 졸업식장. 개척상(Pioneer Award) 수상 순서가 되자 남봉철 교장이 갑자기 마이크를 들고 단상을 내려섰다. 그 순간 휠체어를 탄 여학생이 스스로 바퀴를 굴리며 앞으로 나왔다. 세 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박수빈(18)양이었다. 교사 30여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도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박양과 마주선 남 교장은 “박수빈양은 지난 3년간 학교가 지향하는 참진리 정신과 개척자 정신, 꿈을 실천하는 학생이었다”고 박양을 소개했다. 교사 5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상을 받는 박양은 지난 3년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러나 평소 ‘터프걸’로 통하는 박양의 표정은 담담했다. 여학생이 보일 법한 눈물도 없었다. 그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하죠…. 감사할 따름”이라고 짤막하게 말했을 뿐이다.

박양의 고교 3년은 ‘개척의 세월’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1등을 놓치지 않던 박양은 2004년 9.6 대 1의 경쟁을 뚫고 용인외고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박양은 처음 가족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어머니 김정현(47)씨는 매일 수업이 끝나는 오후 11시 즈음이면 기숙사를 찾아 몸이 불편한 딸을 자리에 눕히고 집에 돌아간 뒤 다음날 오전 4시면 다시 학교로 와 딸을 깨웠다.

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바람에 허리가 휘는 증상(척추측만증)이 심해져 교정 수술을 받았건만 허리는 여전히 아팠다. 하반신 감각이 없어 다리가 꺾여도 스스로 느낄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기말시험을 앞둔 여름에는 오래 앉아 있을 때 생기는 욕창이 속을 썩였다.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박양은 시험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결국 고 2때는 한 달을, 고 3때는 2주 동안 학교를 쉴 수밖에 없었다.

박양을 지탱해준 것은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이 필기를 챙겨 주고, 휠체어를 밀어 주며 손발이 되어 준 것이다. 방학 때는 콘서트나 영화를 보러 가며 함께 스트레스를 풀었다. 친구 김수진양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수빈이가 위로해 주며 용기를 줬다”며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유수연양은 “수빈이가 ‘너희는 위를 보지만 난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아래를 잘 본다’며 밝게 생활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3월 박양은 서울대 경영대생이 된다. 나중에 방송기자나 아나운서가 되는 게 꿈이다. “고교 때 학교에서 팝송을 틀어 주는 아나운서를 했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뭐든 전하는 게 즐거워요. 경제나 (장애우) 복지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기자로 이곳저곳 다니는 건 어려울 법하다. “물론 불편하겠죠. 하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돌아다녀야 다른 사람도 휠체어 탄 사람에게 익숙해져 더 이상 특이하다고 쳐다보지 않을 걸요.” 박양의 미소가 눈부셨다.

글=백일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