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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광장-

희망우리학교관련

 

【서울=뉴시스】정의진 기자 =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만 무려 초중고교 학생 7만6489명이 학업을 중단했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3만8787명이 학교를 떠났다.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자퇴서를 낸 뒤 서울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최훈민(17·한국디지털미디어고 2년 중퇴)군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과열 입시경쟁'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군이 학업을 중단한 이유 역시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때문이었다.

그는 "학교가 친구를 경쟁자로 만들고 성적에 따라 계급을 나눴다"고 지적하며 "더 이상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날이 갈수록 횡포해져 가는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 또한 "과도한 입시경쟁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처럼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입시교육에 있다는 결론에 내린 최군은 '학생이 주인인 학교, 선생이 없는 학교'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설립하기로 했다.

봄 햇살이 완연했던 지난 15일 최군을 만나 자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중요한 시기에 학교를 자퇴하게 된 이유는.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을 항상 갖고 있었다. 정보기술(IT) 특성화고에 입학한 것도 입시공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학교도 일반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때마침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문제의 본질은 제쳐둔 채 불필요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더 이상 학교에 희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대한 회의감이 더해졌고 학생이 주체가 되는 학교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입시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가 된 것이다."

- 정부가 무시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과부는 최근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문제의 본질인 입시교육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실효성 없는 복수담임제나 일진경보제 등만 내세웠다. 더구나 복수담임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하지만 누가 학급을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제도적 의미가 없다. 일진경보제도 문제다. 일진이 탈퇴하면 폭력이 근절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일진이 있으면 미리 경보해주는 건지 실제로 적용이 불가능하다. 말도 안되는 대책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이는 학교폭력 문제를 진단한 것이 아니다. 이밖에도 여성가족부는 폭력적인 게임 때문에 이같은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소년들의 게임 접근성 또한 제한했다. 물론 게임이 학교폭력 중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폭력적인 웹툰이 문제라고 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지적을 받고 있는 웹툰은 이미 청소년은 볼 수 없도록 제한돼 있던 것이다. 결국 입시교육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외딴 곳에서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입시교육이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입시교육이 학교 친구들을 더 이상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만들어버렸다. 친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선뜻 거리낌 없이 가르쳐 줄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결국 학생들은 반복된 경쟁과 평가에 따라 상중하로 등급이 정해진다. 하위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패배자로 낙인 찍히고, 상위권 학생들과 비교를 당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의식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학교 내 성적차별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서 계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때 상위권 학생들보다 신체적 조건이 우월한 하위권 학생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로써 학교폭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폭력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인권과 길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아니다. 성공과 패배의 길로 나눈다. 결국 학생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은 전면적으로 입시교육 때문에 발생한다."

- 경쟁과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는 의미인가.
"물론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가자는 뜻은 아니다. 학업에 대한 평가와 동료 간 경쟁은 필요하다. 다만 각자의 길을 존중해 주는 선에서 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험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해선 안된다. 시험 자체의 문제는 없다. 등급을 매기기 위한 시험이 돼버리는 것이 문제다. 학교는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돌보기는 커녕 오히려 비교를 통해 패배의식만 심어주고 있다."

- 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험 점수가 낮다고 해서 자녀한테 '너는 패배자',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실제로 '너희 대학 안갈래' '그러다 지잡대 간다' '지잡대 가면 인생 망쳐' 등 막말을 하는 선생님들이 수두룩하다."

- 지잡대가 무엇인가.
"지방 잡대학이다. 왜 지방에 있는 대학은 잡스런 대학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것 또한 대학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것 아닌가. 각자의 길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면 되는 건데, 성공과 실패의 길을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학벌위주의 사회 탓이다. 이 때문에 '죽음의' 입시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교과부도 이 나라의 수장도 전면적으로 바꾸진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현 정부와 교과부는 입시교육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학교가 현 시점에서 갖는 의미는.
"학교는 3류 학원이나 같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 차원에서 볼 때 학교 교사들은 인터넷강의 강사나 학원 선생님들보다 능력이 안된다. 심지어 학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인생의 스승' 역할 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 있으면 있을수록 학생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있으면 상처만 받을 뿐이다. 현재로선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학교는 없다."

- 자퇴를 결심하고 새로운 학교 설립까지 목표로 삼았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부모님도 입시교육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계셨던 터라 무작정 반대하시기 보다는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셨다.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방법론적인 차이는 있지만 내 의견에 공감을 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입시교육이 잘못됐다는 사실 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공적으로 노출을 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만의 문제이기 보다는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하루에 고등학생 100여명 자퇴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결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정보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학교도 설립하고 싶다."

- 최군이 앞으로 꿈꾸는 학교는.
"정확한 학교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칭 '희망의 우리학교'로 이름 지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의미다. 다만 선생님이 없는 학교를 추구한다. 선생님의 자격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얘기다. 학생들도 잘 아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고 학습 방법도 강습과 여행, 인턴십 등 다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 '우리학교'의 학생상은.
"주체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본인이 배우고자 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학교 입학자격 또한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학생이 자신과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졸업자격은 저명있는 전문가들의 추천서를 받는 것으로 대신할 예정이다."

- 정규 교과과정을 밟은 학생과 우리학교 졸업생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벌과 스펙, 봉사활동 시간, 어학연수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장이라면 실제로 이 친구가 그동안 '우리학교'에서 어떤 체험 활동을 해왔는지 눈여겨 볼 것이다. 오히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욱 진실성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소설보다 자기소개서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아무리 자기소개서를 잘 써봐야 그건 진짜가 될 수 없다."

- 소위 말하는 스카이(SKY)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방대나 전문대 학생들이 같은 이유로 자퇴를 선언한 경우 큰 반향이 나타나진 않는다. 이유가 뭘까.
"후자의 경우 그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질이 나쁘거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아니다. 그저 수치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평가받아왔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 전문대생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자퇴를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인 편견일 수 있다. '공부를 못해서' '인생 망해서'라는 앞선 판단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 최군의 자퇴와 학교 설립에 대한 주위의 우려는 없나.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은 있다. 대구의 한 학부모님이 자신의 딸이 우리학교 만들기 모임에 가려고 한다며 원망을 표시하셨다. 그 분도 입시교육이 잘못됐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하지 않겠냐고 성토하셨다. 그래서 따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답해드리면서도 강요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전해드렸다."

- 전하고 싶은 말은.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희망의 우리학교를 만들고 싶다. 우리학교 만들기는 제한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의향은 있지만 실천은 하지 못하는 분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니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 또 다른 꿈이 있다면.
"IT(정보기술)쪽을 계속 공부해 왔으니까 이와 관련한 직업을 갖고 싶다. 하지만 직업은 생산적인 일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일을 위한 일을 맹목적으로 하는 것은 돈을 댓가로 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의미있게 쓰이는 도구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