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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것저것-

80년 이어온 수제화 자존심..역사는 계속된다

[한겨레][매거진 esc] 을지로 골목 걷기

“저쪽 노가리 골목이랑 우리 집이랑 서울 미래유산에 등재됐잖아. 4월23일부턴가? 구청에서 이 동네 역사 탐방하는 프로그램(을지유람)을 시작하거든. 우리 집은 탐방객들한테 공장까지 공개해서 신발 만드는 과정을 다 보여주기로 했어.”

을지로 역사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은 임명형(53) 송림수제화 대표의 얼굴에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1936년, 임씨의 진외종조부(아버지의 외삼촌)인 이규석씨가 ‘송림화점’이란 이름으로 을지로3가에 터를 잡은 지 80년. 아버지 임효성씨를 거쳐 임 대표가 가게 운영을 도맡은 지금까지 송림수제화는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이 골목의 변화를 지켜본 산증인이자, 역사의 일부가 됐다.

임명형 송림수제화 대표.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임명형 송림수제화 대표.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임 대표는 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요기(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서울 을지로)가 참 많이 변했지. 을지극장에서부터 파라마운트극장, 판 코리아(극장식 식당), 나이트클럽(돈텔파파)으로…. 호텔 지을 때도 되게 오래 걸렸어. 터 파기를 하는데 일제시대 집터가 나와서 유물 발굴하느라 공사 중단되고, 더 파내려갔더니 조선시대 우물터랑 집터들이 그대로 나와서 또 그거 발굴하느라 중단되고. 이 일대가 일제시대부터 자유당 시절까지 번성했던 동네라 곳곳에 문화재들이 널려 있는 거지.”

을지로의 역사가 땅속에 묻혀 있지만은 않다. 송림수제화는 한국 최초의 수제 등산화와 산악스키화를 만들어 팔고, 88올림픽 때 사격화를 협찬하며 80년을 이어왔다. 그동안 ‘협객’ 김두한,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씨, 김영삼 전 대통령,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등 다양한 인물들이 이곳 장인들이 만든 신발을 신었다. 지금도 단골 중엔 매일같이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력 정치인들이 제법 된다. 어디 어깨에 힘 들어간 사람들뿐이랴. 멋내기 좋아하는 이들이 떼로 몰려오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우리 집 하나만 남았지만, 60~70년대엔 여기가 제화점 골목이었어요. 이대생들이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선수금을 내고 신발을 맞추는데, 이게 완성되면 제일 맘에 드는 하나만 사가는 거야. 그런 일이 많았지. 스키 타는 고대생, 연대생들은 우리 집에서 밤새 진을 쳤대요. 빨리 스키화를 받아서 대관령을 넘어가야 되는데, 그땐 통행금지가 있으니 밤에 받으러 올 수가 없잖아. 밤새 가게에 있다 (통금이 풀리는) 새벽 4시 되면 쏜살같이 나가고 그랬대.” 마치 눈앞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 듯, 임 대표가 생생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임 대표는 지금, 오는 4월 산악인 허영호씨가 다섯번째로 도전할 에베레스트에 신고 갈 신발을 만들고 있다. 주문이 얼마나 밀려드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 덴 한 달 정도가 걸린다. 이 과정은 경력 20~30년을 자랑하는 장인 6명과 젊은 직원 3명이 나눠 맡는다.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신발을 만들면서도, 첨단 기능성 소재인 ‘쉘러’를 쓰는 것처럼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셈이다. 젊은 직원 중엔 임씨의 큰아들 승용(25)씨도 있다. 작은아들 승철(22)씨는 군복무 중인데, 제대하면 형과 함께 가업을 이어갈 계획이란다. “둘 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학에서) 제화과를 나왔어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니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 뭐” 하며 웃는 임 대표의 얼굴에 다시 한번 자부심이 번졌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된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