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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광장-

미 변호사되어 돌아온 입양아

2007년 7월 7일 (토) 02:52   조선일보

미안해 하지 마세요 미 변호사되어 돌아온 입양아

 
6일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 접견실. 파마머리를 한 중년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접견실에서 기다리던 이남미(미국 이름 Casey Daum·26)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1981년 생후 4개월 만에 미국 가정에 입양된후 꿈속에서나 만나던 엄마(48)였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꼭 껴안은 모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26년의 세월, 엄마와 딸 사이엔 그 시간만큼의 거리가 아직 남아있었다.

“네가 하버드대학을 나와 변호사를 하고 있다니…너무 고맙다.


▲ "미안해 하지 마세요" 6일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입양아 출신 미국 뉴욕주 변호사 이남미(26)씨가 생모와 포옹하고 있다.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이씨는 이날 처음 친어머니를 만났다. /동방사회복지회 제공
”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딸의 얼굴을 뜯어봤다. “코와 입, 턱이 정말 나와 똑같구나.” 붉어진 두 눈에서 이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1년 전부터 뉴욕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남미씨는 가방에서 준비해온 질문지를 꺼냈다. “엄마를 만나면 긴장해서 잊어버릴까봐 미리 질문을 적어왔어요.” 종이 위엔 한글과 영어로 쓴 10여개의 질문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딸은 자신이 입양된 이유, 입양까지의 과정, 엄마가 살아온 삶, 현재 엄마의 가족에 관해 영어로 물었다.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까지 어쩜 나와 이렇게 닮았는지….” 통역을 통해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는 신기해했다. “21살 때 사귀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어. 덜컥 임신하고나니 혼자 너를 키울 자신이 없어지더라.” 아이 얼굴을 보면 정이 들까 두려웠던 엄마는 아이를 낳자마자 곧바로 입양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를 통해 해외입양을 보냈다. 복지회는 아이에게 아빠 성을 따라 ‘이남미’라는 한국이름을 지어줬다.

남미씨가 생모를 찾은 것은 6년 전인 2001년이었다. 여느 입양아들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남미씨는 고교생이던 1998년 입양기관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고아원을 둘러보며 입양을 통해 더 많은 기회를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복지회에 의뢰, 생모를 찾았다. 그때부터 6년 간 남미씨와 엄마 사이에 10여통의 편지와 사진이 오갔다.

엄마는 2001년 남미씨로부터 처음 편지를 받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쳤죠. 첫 답장을 쓰기까지 6개월이 걸렸어요.”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를 낳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아이를 떠나 보낸 사실이 죄스러웠다고 했다. “단 하루도 내 손으로 길러본 적이 없는데, 내가 딸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결혼과 이혼, 삶의 부침을 겪어온 엄마는 “벌을 받는구나 생각하며 26년을 살았다”고 했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모녀에게 모두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만남을 제안하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 꼭 보자”는 말만 되풀이하며 모녀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이,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지난해 남미씨가 먼저 “한국에 가면 나를 만나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좋다”는 답을 받은 후 올해 여름휴가 때까지 다시 반 년을 기다렸다.

원예사업을 하는 양아버지와 고교 교사인 양어머니 사이에 입양된 남미씨는 “늘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었던 의지가 내 삶의 방향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법조인의 꿈을 가졌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정체성의 혼란도 ‘배움’으로 극복했다. 하버드대에 진학한 뒤엔 교내 재미교포 2세들의 잡지 ‘2세’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한국의 역사에 관한 교양수업을 듣고, 입양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남미씨는 고교 때부터 한국 입양아들이 모이는 캠프에 참여해 같은 처지의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성적이 뛰어난 하버드생에게 수여하는 디튜어상(Detur Prize)과 존 하버드 장학금(John Harvard Scholarship)을 받았고, 졸업식에선 우등상인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를 수상했다.

남미씨는 “나를 입양시켰던 엄마의 당시 사정과 슬픔을 이해한다”며 “한 번도 엄마를 원망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18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엄마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경주에서 엄마를 한 번 더 만날 생각이다. 남미씨는 “내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다른 입양아들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라며 “한국사회가 편견을 버리고 입양아들을 폭넓게 끌어안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수현 기자 paul@chosun.com]